템플릿 없이 글 쓰기: 디지털에서 창작으로

1. 복제의 시대, 글쓰기가 잃어버린 고유성

디지털 콘텐츠 시대에 글쓰기는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템플릿이 존재하고, 몇 개의 키워드만 입력하면 완성된 문장이 제시된다. 블로그, 자기소개서, 기사 작성까지도 규격화된 구조를 따라가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글쓰기 도구의 발전은 효율성을 높여주었지만, 동시에 창작자로서의 감각과 고유한 언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글쓰기가 더 이상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 아닌, 형식과 목적 달성의 수단이 되어가는 현실은 창작자에게 큰 고민을 안긴다.

필자 역시 한때 템플릿을 활용해 글을 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도입, 전개, 결론이 정해진 형식을 따르고, 문단마다 필요한 문구를 자동 생성해 활용하다 보면 일정한 글의 틀은 갖추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직접 생각하고, 선택하고, 고뇌한 흔적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 결과, 글을 쓰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줄었지만, 쓰고 난 뒤의 만족감은 현저히 낮아졌다. 마치 기계적인 작업을 반복하는 느낌이었고, 그 안에는 창작의 즐거움도, 진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를 깨닫고 난 후, 필자는 글쓰기를 근본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템플릿이라는 울타리 없이도 글을 구성할 수 있는가? 문장이 아닌 생각에서 출발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결국 ‘나는 왜 쓰는가’라는 창작의 본질로 돌아가는 과정이 되었고, 디지털 도구가 아닌 나 자신의 감각으로 글을 구성하는 실험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2. 템플릿 없는 글쓰기의 두려움과 자유 사이

템플릿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공허함이었다. 빈 문서를 열어두고 아무런 형식도 갖추지 않은 채,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해진 틀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유와 동시에 막막함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익숙하게 사용하던 구조가 없으니, 글의 방향도 잡히지 않았고,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그러나 이 느림 속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각의 확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점차 필자는 자신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소리,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 한 가지 감정에서 출발한 생각의 흐름을 문장으로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글의 목적보다는 흐름이 중요해졌고,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보다도 자연스럽게 떠오른 언어를 어떻게 엮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는 기계적으로 완성하는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동안 몰입의 질이 달라졌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구조를 만들어가다 보면, 뇌는 더욱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된다. 이로 인해 문장은 다소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글에는 고유한 리듬과 감정의 깊이가 담겼다. 읽는 이가 느낄 수 있는 진정성과 독창성은 바로 이러한 비효율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3. 디지털 툴을 내려놓고 감각을 되살리는 과정

템플릿 없는 글쓰기를 실천하면서 필자는 디지털 도구 사용 역시 함께 줄이기로 했다. 자동 완성 기능을 끄고, 맞춤법 교정기를 끄고, 심지어는 스마트폰 메모 앱 대신 종이 노트에 글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런 아날로그 전환은 글쓰기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손으로 직접 적는 문장은 속도가 느리지만, 그만큼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감정의 미묘한 결을 살려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디지털 툴은 편리하지만, 자칫하면 창작자와 문장 사이에 거리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 문장 추천은 생각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으며, 이미 완성된 문장을 선택하는 반복은 나만의 언어를 갈고닦는 기회를 줄인다. 필자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가능하면 초고는 모든 기능을 끈 상태에서 쓰기로 결정했다. 오직 단어와 문장만으로 생각을 전개하는 훈련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글의 밀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또한, 구조적인 글쓰기보다 감정 중심의 글쓰기를 시도했다. 독자의 반응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했고, 정답보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이처럼 템플릿을 벗어나면 글쓰기는 단순한 작업이 아닌, 감정의 해석과 경험의 재구성이 된다. 글이 갖춰야 할 완성도는 떨어질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살아있는 문장’이 담긴다. 독창성과 공감력은 바로 이 비정형적인 글쓰기에서 나온다.

4. 창작자로서의 회복: 틀에서 자유로움으로

템플릿 없이 글을 쓰는 것은 처음에는 불안하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반복하다 보면, 그 글은 점점 나의 언어를 닮아가기 시작하고, 글쓰기는 더 이상 ‘작업’이 아닌 ‘표현’의 행위로 바뀐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창작자로서의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 시작점이 나의 감각에서 출발할 때, 그 문장은 나만의 것이 된다.

글쓰기의 본질은 결국 전달이 아니라 표현이며,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템플릿은 때때로 글을 완성시켜주지만, 동시에 나만의 언어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틀에서 벗어나는 연습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창작자로서의 정체성과 창의력을 회복하게 해준다. 필자에게 있어 그 변화는 단지 글쓰기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전반적인 방식의 전환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형식의 글을 쓰고 있다. 만약 당신이 그 속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 싶다면, 템플릿을 버리고 빈 문장으로 시작해보길 바란다. 처음엔 더딜 수 있지만, 결국 그 글은 가장 진실한 당신의 표현이 될 것이며, 그 안에서 진짜 창작의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