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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마트폰 없이 여행하기: 진짜 기억을 남기는 법
    정보공유 2025. 5. 14. 14:32

    스마트폰 없이 여행하기: 진짜 기억을 남기는 법

    1. 손에 들지 않은 스마트폰, 비로소 눈앞에 펼쳐진 세계

    오늘날 여행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카메라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타인과 공유되는 콘텐츠가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사진 촬영이고, 이 사진은 곧장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된다. ‘여기 왔다’는 인증, ‘이런 걸 봤다’는 자랑, ‘이 순간을 기록한다’는 사명 아래 사람들은 여행지의 풍경보다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먼저 바라본다. 필자도 과거에는 여행 내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으며, 멋진 순간마다 셔터를 누르며 경험이 아닌 저장에 집중하는 여행을 반복했다.

    그러나 문득, 이 모든 것이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만 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그 장소에서 어떤 냄새가 났는지, 공기의 질감은 어땠는지,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흐릿했고, 그저 폰 속 사진첩에 저장된 이미지들만 남아있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진짜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기 위한 실험으로, 스마트폰 없이 떠나는 짧은 국내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오직 지갑, 종이 지도, 노트와 펜만 챙긴 채 떠난 이 여행은 시작부터 불안감과 동시에 신선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예약 확인도, 위치 검색도 불가능했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더욱 주의 깊게 내디뎠다. 주변에 물어보고, 표지판을 읽고, 직접 걸으며 길을 찾는 과정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진짜 공간과 시간을 느끼는 체험이 되었다.

    2. 정보 없이 떠나는 여행이 열어주는 감각의 회복

    여행 중 가장 먼저 달라진 점은 ‘감각의 복원’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음악도, 영상도 없고, 심지어 시간을 확인하는 일조차 잦지 않았다. 필자는 버스를 기다리며 손에 쥔 것은 화면이 아닌, 주변 풍경이었다. 사람들의 표정, 낙엽의 움직임, 거리의 냄새 등 기계에 의해 차단됐던 감각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가게 간판을 바라보며 어떤 음식이 나올지 상상하고, 현지인에게 물어보며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일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특히 식사 시간이 가장 특별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음식 사진을 찍는 일도,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화 도중 시선을 빼앗기는 일도 없었다. 온전히 식사에 집중하자 음식의 맛은 훨씬 풍부하게 느껴졌고, 함께한 사람과의 대화도 깊어졌다. 이처럼 디지털 장치 없이 오감에 몰입한 식사는 기억에 더 오래 남았다. 스마트폰으로 남기는 사진 한 장보다, 내 입안에 남은 맛과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더욱 강하게 각인되었다.

    또한, 길을 잃었을 때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예전에는 단 몇 초 만에 지도를 검색해 해결할 문제를, 이제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주변을 관찰하고, 직접 걸어보며 풀어야 했다. 이 과정은 여행을 보다 능동적이고, ‘이야기가 생기는 시간’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내가 직접 움직이고, 경험하고, 선택하는 순간마다 기억은 더 단단하게 쌓였다.

    3.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의 변화: 사진 대신 느낌을 남기다

    사진을 찍지 않고 여행한다는 것은 처음엔 어색했다. 무언가 멋진 풍경을 보아도 즉시 촬영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불안했고, ‘이 순간을 잊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불안은 오히려 집중력으로 전환되었다. 사진을 찍지 않으니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고, 뇌는 그 장면을 더 세밀히 저장하려 노력했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과 후각까지 총동원하여 그 순간을 마음에 새기게 된 것이다.

    여행 중 만난 오래된 골목에서 흘러나오던 트로트 음악, 거리의 고소한 붕어빵 냄새, 어딘가 익숙한 강아지의 짖음 같은 감각은 사진으로는 남기기 어렵지만, 기억 속에는 더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필자는 이때부터 여행 노트를 꺼내, 특정 장면에서 느낀 감정을 짧게 메모하기 시작했다. “여기선 햇살이 따뜻했음”, “아줌마가 물어본 길 친절하게 설명해주심” 같은 간단한 기록들은 사진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순간을 복원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 결과,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사진첩을 넘기듯 감정을 다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기억은 저장 장치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남을 수 있으며, 오히려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기록한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여행의 의미는 얼마나 많이 찍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느꼈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4. 스마트폰 없는 여행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

    스마트폰 없는 여행이 무조건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보 접근, 예약 확인, 긴급 상황 대응 등에서 분명한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순간을 스마트폰 없이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연결을 끊고 느끼는 구간’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후 여행에서도 하루 일정 중 최소 3시간은 스마트폰을 꺼두고 여행지를 걷는 ‘디지털 오프 타임’을 실천하고 있다.

    이 시간을 위해 미리 종이 지도나 관광 안내소 정보를 활용하고, 필요한 연락은 특정 시간대에만 확인하며, 사진은 대신 작은 수첩에 그리는 방식으로 대체했다. 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여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정 자체를 아날로그 활동 중심으로 구성했다. 예컨대 현지 시장을 직접 걸으며 장을 보고, 낯선 카페에서 손글씨로 일기를 쓰는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간은 일시적인 단절이 아닌, 진짜 몰입과 감정의 회복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방식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 꼭 스마트폰을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지만, 여행 중 일정 시간을 정해 폰을 멀리하는 습관만으로도 여행의 질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무엇보다 기억이 ‘기록된 이미지’가 아닌, 오감과 감정으로 남도록 설계하는 여행이 가능해진다.

    당신이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는 선택을 해보자. 불편함 뒤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이 기다리고 있고, 그 감동은 어떤 사진보다 오래, 선명하게 당신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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